아임! 이번 편지는 고막사람의 2주년 편지다. 금세 2주년이 되어버렸네. 1주년 편지를 잠깐 찾아봤더니
049_끝나지 않는 신변정리의 늪 오막 to 한아임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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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임!
이번 편지는 고막사람의 2주년 편지다. 금세 2주년이 되어버렸네. 1주년 편지를 잠깐 찾아봤더니 그 편지는 아임이 오막에게 보낸 편지였다. 거기에 너는 '벌써 일년' 음악을 첨부했더군! 나는 '2년'이 들어간 노래들을 검색해서 랜덤으로 들어보았다. 그중에 맘에 드는 노래가 있어 너에게 들려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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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조회수 200도 채 되지 않는, 아주 숨겨진 노래다. 이렇게 랜덤으로 좋은 노래를 발견하는 재미가 있구먼! 그냥 너가 좋고 너의 제안이 흥미로워했던 프로젝트가 이렇게나 이어질 줄은 알면서도 몰랐다. 알면서도 몰랐다…. 이해가 되는가? 너라면 이해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혹시나 기록이 있을까 싶어 고막사람을 시작할 당시 우리가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찾아봤다. 정말 별거 없더군? "혹시 너 음악에 대해 글 쓸 생각 있어?"라는 너의 한마디에 나는 OK를 했다. 그렇게 하기 싫은 것은 죽어도 하지 않는 내가 말이야. 뭐라도 너랑 계속하고 싶었을 거라는 이야기다. 아주 싱겁고도 단순한 놈이군. 오막이란 자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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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임아,
우리가 알게 된 20년 중 우리는 요즘 정말 양으로 보나 질로보나 아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고막사람을 시작하고 나서 1년 10개월 동안 나눴던 이야기보다도 더 깊은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지. 너가 한국에 왔을 때도, 그리고 지금도, 우리는 수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근 2,3개월만에 너의 세계에 대해 너무 많은 것을 알게 된 것 같다. 물론 너의 세계가 나의 세계이지만 말야.
어쨌거나, 이렇게 이야기를 많이 하니 너가 말하는,
‘원하는 것을 말로는 하지만 사실은 그것을 원하지 않고 있다’는 그 문장을 조금은 이해하게 된 것 같다.
모든 불안함의 근원은 이것이다. 원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원하지 않을 때, 변화를 원하지만, 사실은 모든 게 변하지 않고 현상 유지를 하고 있음에 안정감을 느낄 때, 그것이 모든 불안함의 시작이다. 나도 내가 성공하기를, 그리고 돈도 많아지기를 원하지만, 사실은 그것이 나에겐 절대 벌어지지 않을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수도 있다.
너가 말한 것처럼 아마 이 세상 모든 인간은 마음 깊숙이 이런 두려움을 안고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자기가 원하는 것을 정말 깔끔히, 순수히, 퓨어하게 원하는 사람들이 그동안 자기가 원하는 것을 가졌을 것이다. 그것이 물질적인, 사회적인 성공이 아니더라도 자기가 원하는 그 무엇이든 얻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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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mas Gun - You Are The Music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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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가 요즘 가장 자기 자신을 기쁘게 한다는 ‘편안함’의 감정. 참고로 전 편지에서 너는 ‘편안’이라는 단어를 28개나 썼더라. 히히. 어쨌든, 그 편안함이라는 것은 단순함에서 오는 것 같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내 삶을 단순하게 만드는 것이 편안함으로 가는 첫 번째 계단인 것 같다.
너도 이미 알고 있지만, 네가 있을 곳이 아닌, 그 미국으로 네가 다시 돌아간 후에 나는 한 달 동안 쭉 내 생활의 많은 것들을 정리하고 있다.
내 주변의 물건, 이를테면 옷이나 안 쓰는 잡동사니들부터 내가 온라인과 오프라인에 어지럽게 지니고 있었던 수많은 사진이나 영상 등의 데이터들도, 나아가서 내 쓸데없는 생각들도 지우고 있는 듯하다. 이미 집안의 모든 서랍들을 다 뒤집어엎었고 유용하든 유용하지 않든, 혹은 어떤 기억들이 담겼건 안 담겼건, 내가 몇 년 동안 ‘보관’만 한 물건에 해당한다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다 쓰레기봉투로 넣어버렸다. 옷장과 옷 박스들을 뒤집어엎어서 안 입었던 옷들, 이유는 모르겠으나 이쁜데도 내가 보관만 했던 옷들, 한동안 소비병에 걸려서 모았던 멋진 신발들을 아주 많이 팔았고 또 여전히 진행 중이다.
맥북과 데스크탑은 포맷을 했다. 포맷을 진행하기 전에 그 안에 있던 것들을 쭉 둘러봤는데, 정말 뭐 이렇게 열어보지도 않은 것들로 컴퓨터가 가득 차 있던지. 필요한 것들만 쏙 남기고 다 지워버렸다. 여기서 필요한 것들이라고 하면, 앞으로 내가 할 음악 & 영상 작업들의 프로젝트 파일들이나 나중에 사진집으로 낼 것 같은 사진들 정도였다.
언제 썼는지도 모를 글들도 있었는데 (시나리오나, 그냥 개인적인 글) 그냥 지워버렸다. 어차피 다시 쓸 것 같지도 않고 글을 쓴다면 새로 쓸 것 같은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집에 있던 5개의 외장하드들도 필요한 게 없다고 판단되면 과감히 포맷을 해버렸다.
아직 하지 못한 것은 온라인 하드, 이를테면 네이버 클라우드나 구글 드라이브에 있는 파일들이다. 하지만 곧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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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머리 - Love (Feat. Bumkey, Paloalt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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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비우고 나면 사실 겉으로 보이는 내 주변은 별 변화가 없어 보이지만 내면은 한결 가벼워진다. 옷 몇 벌 없애버린다고 내 방에 변화가 크진 않지만, 내 마음은 변화가 크다.
비우면 단순하고, 단순하면 명확하고, 명확하면 편안하다. 그럼 그제서야 비로소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할 수 있으며 그것을 순수하게 믿을 수 있다.
전에 말한 적 있지. 우리가 만나고 나서 모든 게 명확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명확하게 해야 할 것들 비우고 비우려다 보니, 내가 저장해놨던 멜론이나 스포티파이 등의 재생목록도 비우려 했다. 그렇지만 그것만은 건들지 않았다. 재생목록의 맨 처음으로 가서 내가 처음으로 좋아한다고 저장했던 노래를 들어봤는데 뭐 여전히 좋더군. 물론 뒤져보다 보면 이제는 좋아하지 않는 음악들도 있을 테고, 그걸 골라서 지우는 맛도 있겠지만, 그 당시에 내가 좋아한 음악을 듣는 것도 쏠쏠한 재미가 있길래 지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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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멜론 '좋아요' 재생목록의 맨 밑에 있는 노래다. 여전히 좋기도 하면서, 재밌게도 확실히 내 음악들에 영향을 줬다는 걸 알 수 있다. 참 신기하군. 무의식적으로 내 음악에 침투하다니 말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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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q Soulchild - Makeyouhapp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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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음악 또한 그렇다. 내가 뮤직 소울차일드를 들어본 지가 언제인지. 이참에 다시 한번 들어봐야겠다. 사실 위에 올린 음악들도 나의 ‘좋아요’ 재생목록 초반에 있던 노래들이다. 여전히 듣는 노래도 있고 지금은 듣지 않는 노래도 있다. 그것들이 다 모여서 나의 취향이 됐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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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산다는 것은 취향의 연속일지도 모른다. 너도 알겠지만 요즘 나는 골프에 빠져 산다. 시작하기 전에는 내가 그렇게나 코웃음 쳤던 그 골프 말이다. 볼 한 번 치고 쪼르르 걸어가서 또 치고, 쪼르르 걸어가서 쪼매난 구멍에 더 쪼매난 볼을 넣고. 이게 무슨 재미가 있다고 사람들이 그렇게 열광하는지! 근데 해보니 내가 빠져버렸다. 내 취향이었던 것이지. 너와 통화를 할 때면 우스갯소리 반으로 골프에서 인생을 배우는 것처럼 말하는데, 정말 농담이 아니긴 하다. 나는 골프를 하면서 삶에 필요한 가장 중요한 것을 깨달은 것 같기 때문이지.
힘을 빼야 한다.
이건 적어도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우리의 우주에는 무조건 적용되는 진리 같은 것이다. 마치 이런 것과 비슷하다. 우리가 사는 이 우주는 가만히 있으면 말 그대로 먼지가 쌓이고 주변이 더러워진다. 이 우주가 그렇게 설계되어 있다. 이 우주에는 이렇게 ‘설정’이 된 환경이 몇 개 있는데 내가 이번에 발견한 것이 ‘힘을 빼야 잘된다’라는 것이다. 일단 스포츠로 좁히면 더더욱 그렇다. 모든 스포츠는 ‘힘 빼기’에 수년이 걸린다. 그리고 수년이 걸려 몸에 힘을 빼는 방법을 터득했을 때 프로가 되는 것 같다. 골프 스윙 시 온몸에 힘이 들어가면 절대 잘 칠 수가 없으며, 투수가 공을 던질 때에도 온몸에 힘이 들어가면 공을 바닥으로 패대기칠 뿐이다. 축구공을 찰 때도 다리에 힘을 빼고 임팩트를 줘야 자기가 원하는 곳으로 공을 가볍게 보낼 수 있으며, 복싱을 할 때도 온몸에 힘이 들어가 있으면 순발력이 떨어져 얻어맞게 될 것이다.
온몸에 힘을 주고, 나의 온 삶에 힘을 주고 살아간다면 내 삶을 패대기칠 가능성이 크다.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과는 다른 말이다. 온몸에 힘이 들어가면 뭔지도 모르고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겠지. 하지만 자기가 최선을 다해야 하는 ‘항목’은 힘을 빼고 내 취향이 뭔지 자연스레 알아챘을 때 발견하게 되는 법이다. 그리고 그렇게 발견한다면, 정말 온몸에 힘을 주지 않아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인지 하지도 못한 채’ 최선을 다해 쭉쭉 뻗어나가고 있는 자기를 발견할 것이다. 힘 빼고 맞힌 골프공이 300미터가 나가버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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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enix - Love For Grant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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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임아. 너랑 이런 이야기를 할 때면 너는 항상 ‘오막 너는 이미 다 알고 있었구나!’라는 반응을 보인다. 사실 나도 모르게 이런 것들을 살면서 깨닫고 있었을 수도 있다. 다만 하나 확실한 건, 너랑 이야기하면서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이 ‘단어’와 ‘문장’으로서 명확하게 드러나는 것 같다. 원래 말로 누군가에게 설명할 수 있어야 진짜 ‘아는 것’이라고 하지 않나. 무의식적으로는 알고 있었지만 희미했던 것들이 그래서 너와 이야기하고 나선 더 선명하게 보이는 것일 수도 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이 드는 건, 나는 내 취향에 대해 거짓이었던 적은 없는 것 같다. 좋은 건 좋고, 싫은 건 싫었다. 싫은 걸 좋아한다고 나 스스로 인식하려 해봐도 지금 생각해 보면 나의 행동에서 너무나도 명확히 ‘싫어함’이 드러났던 것 같다.
누군가는 ‘내 취향이 뭐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데에도 수년의 시간이 걸린다는데, 아니 어쩌면 평생을 걸쳐 모를 수도 있다는데, 그런 현상이 나는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을 보면 취향 하나에 대해서는 기가 막히게 내 몸이 반응하는 것 같다. 그것만으로도 살아가는데 참 행운이지 않은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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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ff Bernat - With Love (Feat. Mosae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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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더더욱 힘을 빼기로 했다.
생각해보면 나는 항상 정말 원하는 것을 말 그대로 원했다.
"아 어디선가 10년 된 여자친구가 하늘에서 툭 떨어졌으면 좋겠어요."
최근 연애를 하지 않는 동안 나는 이런 말을 주변인들에게 별 생각 없이 말하고 다녔더랬지. 정말로 그랬다. 모르는 누구를 만나서 다시 첨부터 시작하는건 나에게 너무 귀찮은 일이었다. 그래서 갑자기 나를 잘 아는 누군가가 하늘에서 떨어져서 하하호호 알콩달콩 그저 재밌게 살아갈 수 있으면 했다.
생각보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순수하게 좋아하고, 내가 원하는 것을 순수하게 원하나보다. 저렇게 원했더니 너를 떨궈주는 우주를 보니 말이다. 게다가 우주도 감동했는지 10년이 아닌, 더블로 20년 된 너를 떨궈주니깐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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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막사람도 2년이 아닌 20년이 될 때까지, 아니 그보다 더 오래도록 끌어보자.
모든게 점점 선명해지고 있고, 이 상태를 유지하고 싶다. 그렇다면 나는 너랑 언젠가 당연히도 잘 살고 있을 것 같다. 너가 말한 편안한 상태로. 너가 말한 시원한 상태로.
그러니 힘을 빼고 편안하게 내버려두자.
끝까지 한번 내버려둬보자.
그럼 이번 홀은 알아서 홀인원이 될 것을!
- 내일 스크린 골프를 치러 가는
오막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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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막사람의 2주년을 자축하며...!!
고막사람은 다음번에 아임의 오랜 친구이자 오막과도 중학교 동문인 서윤의 편지로 돌아올 것입니다. 새로운 인물의 등장! 고막사람 3년차의 시작! 모두들 기대해주십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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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약 없이 찬란한 미래를 꿈꾸고 있는 음악 프로듀서다. 학창 시절 미국 Omak에서 1년 동안 살았던 기억과 행복의 느낌을 담아 이름을 '오막'으로 정하고 활동중이다. 평소 말로 생각을 전달하는데에 재주가 크게 없던 오막은 특정 장르의 구분 없이 음악을 통해 생각을 전달하려고 한다. 앞으로 고막사람과 함께 오막 자신의 작업량도 쑥쑥 늘길 바라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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