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임아 고막사람이라는, 음악과 이 세상의 모든 소리에 관해 이야기한다는 우리의 첫 취지와는 다르게 이번
046_늦은 줄 알았으나 가장 빨랐고, 가장 희귀하고도 당연한 오막 to 한아임 2024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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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임아
고막사람이라는, 음악과 이 세상의 모든 소리에 관해 이야기한다는 우리의 첫 취지와는 다르게 이번 편지까지만은 좀 더 우리 이야기를 하고 싶다.
정말 체감도 못 할 정도로 빠르게 시간이 지나가 버렸다. 벌써 네가 돌아갈 날이 2주 남짓 남았다. 물론 우리가 계속해 왔던 말처럼 걱정은 하지 않는다. 그냥 지금 당장 잠깐 못 볼 뿐이고, 빠른 시일내에 다시 함께 할 것을 (계획은 없지만)알고 있기에.
우주는 원하는 것을 가져다준다. 마치 다 짜인 각본처럼 말이야. 다만 그것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갖지 못하고, 하지 못하고 살아간다. 말로만 내가 어떤 것을 원한다고 계속 나불댄다고 해서 그것이 진정 원하는 것은 또 아니다. 진짜 자기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자기 스스로만 안다. 굳이 자주 입으로 말하면 되뇔 필요조차 없다. 너무 당연하게 원해서 인지조차 못 할 때도 있다.
마치 내가 항상 ‘아침에 눈을 뜨면 10년 만난 여자 친구가 띠용 나타나 있으면 좋겠다.’라는 마음을 나도 모르게 내 마음속에 심어놨던 것과 같다. 그랬더니 20년 된 여자 친구를 나에게 대령해 주는, 이 우주는 참 신비롭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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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ldish Gambino - Atavist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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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만나기 시작하고 우리는 우리의 친구들과 몇 번 만남을 가졌더랬지. 그리고 그때마다 항상 돌아오는 ‘같은’ 반응에 나는 너무도 기분이 좋고 신기했다.
‘자연스럽다’는 반응.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바람이 불면 나뭇잎이 펄럭이듯! 그런 자연스러운 현상들. 그중 하나가 우리라는 것이 너무 좋았다. 우리를 학창 시절 때부터 봐 왔던 친구들은 손을 잡고 걸어오는 우리를 보며 너무나 자연스러웠다고, 우리를 비교적 최근인 성인이 되고 나서야 안 친구들도 둘의 공기가 자연스럽다고 반응하는 게 참으로 신기하지 않은가.
여기서 자연스럽다고 함은, 우리의 외모나 인간적인 면뿐만 아니라 아마 타이밍도 포함되는 것일 거다. 우리가 조금 더 일찍 만났다면 (물론 그럴 수도 없었을 거다.. 우주의 각본대로 이 세상은 흘러가고 있으니까) 부자연스럽게 일찍 헤어졌을 수도 있다. 지금 타이밍에 만나는 게 기적인 것 같으면서도 기적이 아닌 것이다. 이전 20년이라는 175,200시간 동안, 내가 너에게 호감을 느꼈던 것과는 별개로 우리가 연애를 하는 시나리오는 우주에겐 없었던 거다. 지금 만난 것이 다행이면서도 다행이 아닌, 당연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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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운명론적으로 들리는가? 그래도 할 수 없다. 요즘엔 이런 생각까지 든다.
내가 대학교에 떨어질 운명이었는데 (어이없을 정도로 고맙게도)추가 합격으로 영화 전공을 한 게, 그리고 그 때문에 영상에 관해 공부하게 되고 촬영일을 할 수 있게 된 게, 그리고 2024년 너가 참여할 북토크의 스케치 영상을 찍어주게 된 게 어쩌면 다 이어진 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 말야. 인과관계는 잘 모르겠다. 무엇이 먼저인지도 잘 모르겠다. 그 북토크의 날은 어쩌면 나의 인생에서 참 중요한 포인트일지도 모른다. 그날 우리의 벽이 많이 무너졌기 때문이야. 새로운 서로를 보게 됐기 때문이지.
어쩌면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나도 나의 일인 촬영을 언젠가 그만두고 싶다고 항상 생각해 왔다. 사실 촬영 자체가 싫다기보단 ‘타인’의 콘텐츠, ‘타인’의 작품을 찍는 일을 주로 하기 때문에 그렇게 느꼈겠지. 근데 그럼에도 계속 나도 모르게 해왔던 이유는 그날을 위해서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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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livia Dean - Dangerously Eas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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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이야기를 하다 보면 각자의 가족들과 상대방이 참 많이 닮아있음을 느낀다.
그것 또한 신기하지 아니할 수 없지. 여기서 닮았다고 함은, 단순히 ‘어머 너 분위기가 우리 아빠랑 너무 비슷하다~’따위의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다.
생각이 닮았음은 너무 당연해서 말할 필요도 없고, 실제로 구사하는 언행이, 단어가 ‘똑같을’ 때가 많다. 소름 돋을 정도로 말야. 게다가 미친! 입는 옷의 스타일, 아 여기서 스타일이라고 하면 또 너무 넓은 개념처럼 들릴 수 있지만 옷의 색 조합이! 입는 옷의 핏이! 옷의 재질이! 같기까지 하다. 근데 이런 것들이 우리의 벽이 무너지고 나서야 보인다는 것도 참 묘한 일이지. 그전에도 우리는 그런 삶을 살았을 텐데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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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의 ‘정상적임’이 보인다는 것은 얼마나 황홀하고 감사할 일인가! 비정상이 판치는 이 세상에서 나의 '정상적임 기준'에 맞는 사람을 만났다는 건 참 당연하고도 귀한 일이다.
정상적인 너와 있다 보면 마음이 참 편안하다.
어떤 유명 소파나 침대에 누워있는 것 보다 몇 배는 더 편하다고 자신할 수 있다. 너무 편해서 나의 가드는 더 이상 필요 없게 되고 나의 말은 필터를 거치지 않으며 춤까지 춘다. 가드를 올릴 필요가 없다. 앞에 있는 이 사람이 나의 상처투성이 일그러진 얼굴을 보고도 그걸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테니까. 내 말이 필터를 거칠 필요도 없다. 필터 없이 내뱉는 내 언행들 중 이 사람이 비정상이라고 생각할 언행이 없을 테니깐. 우스꽝스러운 근본 없는 몸동작을 하고 춤을 춰도 된다. 이 사람이 그걸 보고 나를 싼마이 광대라고 생각하지 않을 테니깐 말야.
모든 것을 치워버린 나를 대하는 너의 모습이 얼마나 나에게 세상에 없던 안도감과 편안함을 주는지, 너가 알고 있을지 모르겠다. 그리고 편안함과 더불어 내가 살아가야 할 방향이 명확해진다. 이 명확함은 ‘아, 내가 아임이를 위해 이렇게 살아야지!’ 같은 명확함이 아니라 오히려 ‘아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해도 되는 사람이겠구나’ 같은 명확함이다. 일과 취미, 해야 할 것과 좋아하는 것, 가야 할 길과 가고 싶은 길, 이런 것들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희미한 먹구름이 껴 있던 내 머릿속 세상이 아주 화창하게 개는 느껴진다. 나에 대한 믿음도 생기고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한 자신도 생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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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mas Gun - This Is The Da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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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번 봄에 우리가 해야할 것들을 하지 못했다. 계획은 언제나 무너지지. 그렇지만 무너질 계획이었던 것이야. 앞으로 더 멀리 크게 보라는 우주의 시나리오인 것이지.
나는 앞서 말했던 것처럼 아무런 걱정이 들지 않는다. 굳이 걱정을 하지도 않겠다. 지금 당장 너가 몇 주 뒤면 내 눈 앞에서 사라지고 매일 볼 수 없음에 슬프고 아쉬운 감정이 들긴 하겠지만 불안함은 없다. 빠른 시일 내에 같은 시공간에 있을 것임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에 걱정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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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
00중학교의 한 2학년 교실에서 처음 보고
'오호 아주 귀엽게 생겼지만 아주 시크하고 무서운 친구로군.'
하고 생각했던 그 날 이후, 내가 쭉 (나조차 모르게)너를 끌어당겼더니 너가 옆에 있게 된 것 처럼 아마 우리는 같은 시공간에 머무르면서 서로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서로가 좋아하는 개드립을 치며 웃으면서 살 것이다. 미래에 대한 상상을 할 때 가끔 정말 명확하게, 아주 선명한 채도로 떠오르는 장면들이 있는데 그것들은 '미래'가 아니라 어딘가에서 이미 그렇게 살고 있는 현재의 우리의 모습이다. 이렇게 말하니깐 너무 사이비종교 교주같긴 한데...뭐, 누군가는 이해할 것이다! 나의 말이 어떤 의미인지! 시간은 허상이고 나이도 허상이며 진짜의 진짜는, 바로 지금 이 순간 내가 인식하는 나의 감정밖에 없기 때문에! 미래도 미래가 아니다.
그리고 20년 동안 시크하고 무섭고 날카롭기만 한 줄 알았던 아임이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줬을 때의 그 희열은 잊을 수가 없구나. 마치 내 가드가 내려갔을 때 보인 내 표정을 보고 너가 깜짝 놀라했던 그 순간처럼 말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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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깐 아임아.
우리는 노력하지 말고 즐겁게 살자. 그냥 개드립이나 치며 차에서 커피나 마시고 그렇게 웃으면서 살자. 하루 하루를 재밌게 웃기게 할 일을 하며 살되, 인생 전체 계획을 세우는 일은 하지 말자는 말이다. 정상적인 서로와 자연스럽게 살자.
이런 마법 같은 일들이 당연한 일들이라는 거. 그걸 지금에라도 알아서 너무 다행이다. 지금에야 알게 될 일이었겠지만 말야.
자연은 사람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자연스러움은 그런 상태를 말하는 거다.
그런 상태를 이제야 찾은 것 같아서 말 그대로 자연스럽게 편안하게 기분이 좋다.
근데 너 이 짜식 요즘 나의 카메라 앞에 서는 게 자연스러워진 것 같더구나? 그래, 더 자연스러워지거라. 왜냐하면 넌 앞으로 100년은 카메라 앞에 서야 할 운명이기 때문이다. 아마 살면서 수만 장의 너의 모습이 오막 카메라를 통해 남겨지지 않을까 싶다.
항상 자연스럽고도 편안하게, 마법처럼 렌즈 앞에 서 있어 보거라.
- 마음이 편안해진 오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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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다음 편지부터는 다시 고막사람의 취지의 가까운 편지들로 돌아갈텐데, 전부터 언급했던 오막의 음악지인 태준의 편지로 돌아올 것 같다. 생각해보니 태준은 또 우리의 만남을 가장 먼저 알게 됐던 인물이기도 하군! 음악에 워낙 관심이 많고 만들기까지 하는 태준이 어떤 이야기를 할 지 정말 기대가 되는군. 점점 우리의 고막사람이 크루처럼 커지길 기대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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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약 없이 찬란한 미래를 꿈꾸고 있는 음악 프로듀서다. 학창 시절 미국 Omak에서 1년 동안 살았던 기억과 행복의 느낌을 담아 이름을 '오막'으로 정하고 활동중이다. 평소 말로 생각을 전달하는데에 재주가 크게 없던 오막은 특정 장르의 구분 없이 음악을 통해 생각을 전달하려고 한다. 앞으로 고막사람과 함께 오막 자신의 작업량도 쑥쑥 늘길 바라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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