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기만자들 부제 2: 거짓인간 부제 3: 구라피플…
045_(일단) 망한 것 같은 안드로이드 멀티버스, 그렇지만 직접 하는 멀티버스 이동. 한아임 to 오막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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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기만자들
부제 2: 거짓인간
부제 3: 구라피플…
…이라기에는 나는 정말 몰랐다…?
첫째로 몰랐던 것은 오막의 빠른 업데이트 능력이었다. 아니, ‘빠르다’는 개념이 적용되지 않을 정도로 즉각적이라서, 가히 한 우주에서 다른 우주의 오막으로 이동해간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 그것도 아니지. ‘이동’조차 적용되지 않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마치 오막이 ‘바뀐’게 아니라 원래 항상 그랬던 것처럼. 그냥 하루아침에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43호 편지에 쓴 내용은 물론이고, 그간 내가 너에게 잔잔하게 빡쳐 있었던 것이 무안하고도 미안할 정도로, 오막ver2.0, 3.0, 4.0로의 업데이트는 빛의 속도로 진행되더구나. 여기서 업데이트되었다고 함은, 꼭 뭔가 내가 “이랬으면 좋겠다”는 형태로 업데이트된 것이라기보다는, 원래의 오막이 드러나는 과정 같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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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뉴스레터를 구독해주는 고막사람들이 이번 편지를 읽을 때 이해해줬으면 좋겠는 점은:
1. 이것은 (어쩌면 아직은) 기록할 수 없고 기록하면 안 되는 것에 대한 기록 시도라는 점.
2. 여러분이 직간접적으로 알듯이, 오막과 한아임은 서로의 존재를 알고 지낸 지 20년이 됐다는 점. 그사이에 일어났거나 일어나지 않은 일을 전부 이야기하자면,
2-1. 일단 너무 길다.
2-2. 뭐가 뭔지 한아임도 모른다. (기억이란 건 현재로부터 수시로 업데이트된다.)
2-3. 오막 혹은 한아임의 가오가 떨어진다.
따라서 아주 많은 의도적 생략과 무의식적 누락이 있을 것인데, 과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편지가 읽을 만할지? 알 수 없다.
일단 선곡은 (주로) 오막의 차에서 들었던 노래들로 골라봤다. 곡들의 내용은 이 글의 내용과 별로 관계는 없다. 그냥 2024년 봄, 한아임이 한국에 와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공간은 집 다음으로 오막의 차였던 것 같다. 그리고 거기서 음악도 쉴 새 없이 들었고, 그 중 몇 곡이 여기 있다.
두 사람이 수일에 걸쳐서! 하루에 대여섯 시간 동안! 차에 죽치고 앉아서! 쉬지 않고 (대개는 개드립으로 구성된) 수다를 떨 수 있는지를 처음 알았다. 오막이 이렇게 웃긴 사람인지도 처음 알았다. 오디오가 빌 틈이 없어… 드립 잽잽이 수없이 날아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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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또 하나 몰랐던 것은, 고막사람의 컨셉이 기만적이고 거짓된 구라인 것처럼 보이게 될 것이라는 점이었다.
“고막여친 말고, 고막남친 말고, 그냥 고막사람 둘이 고막을 울리는 모든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바다 건넌 펜팔.”
이 컨셉이 왜 기만적이고 거짓된 구라처럼 보일 수 있게 되었는가?
한아임이 오막의 여친이 됐고
오막이 한아임의 남친이 되어서.
그렇지만 이 컨셉이 기만/거짓/구라라고 ‘보일’ 순 있어도 ‘실제’로 그렇다고 하기에는, 정말 몰랐다. 사기 칠 의도가 없었다는 얘기다.
한아임의 이 모름이 멍청하다고 한다면, 할 말은 많다. 이를테면, 한아임은 왜 오막에게 십여 년을 잔잔히 빡쳐 있었을까…? 이유 없이 그런 건 아니다. 한아임의 가오는 중요하니까 간략하게만 말하자면, 오막이 한아임을 아낀다면 저럴 리 없다고 생각되는 일들이 있었다고 해두지. 물론 오막은 사랑하는 20년 친구고 워낙에 다정한 애지만, 쟤가 나를 아끼기까지 할 리가…? 라고 생각했다는 거다. (참고: 사랑 - 좋아함 - 아낌에는 고정된 상위/하위 개념이 없다. 단계적인 게 아니다. 예: 사랑하긴 하는데 좋아하진 않아서 괴로운 경우가 있기도 하다.)
하지만 자세한 내용은 오막의 가오 보호를 위해 생략하겠다. 오막의 가오도 중요하니까.
그냥 한아임도 오막도 적당히 멍청했던 것으로 일단 해두자.
알고 보니 우리 빼고 많이들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다더라…? 구독하는 고막사람들 중에서도…? 그리고 심지어 지니엄 카페 사장님도…? 오프라인 친구들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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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di B & Bruno Mars - Please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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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한아임은 멍청하게 뭘 모르는 인간인데, 다행히 이번에 한국에 와서 확실하게 알게 된 것 중 하나는 이거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가 맞는 말이라면, 그 말에서 “사람”은 나임을 알게 됐다. 뭔가가 변하지 않는다면, 안 변하는 건 나다. 반대로, 뭔가가 변한다면, 변하는 건 그 ‘뭔가’가 아니라 나다.
오막이 업데이트됐다면 그것은 내가 업데이트돼서다. 너가 나한테 해주는 황송하고 융숭한 대접을 인정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오히려 인정해서 더욱 그렇다. 내 우주에서 나는 내 시점밖에 모르는데, 내가 얼마나 너를 그렇게 해주는 사람으로 보면 너가 나한테 이럴까. (???!!!) 이것은 오막이 지난 편지에 쓴 내용과 같다. 나한테 있던 벽이 없어진 게 맞고, 그래서 오막 너의 벽이 없어진 것도 맞다.
그런데 내가 벽을 없애려고 했다거나, 업데이트되려고 했다거나, 나를 바꾸려고 해서 바뀐 게 아니다. 가만 보면, 변화는 변화하려고 할 때 일어나는 적이 없다. 그냥 가만히 내비두면 알아서 변화하게 되어 있는 것 같다. 이 아바타계에서 시간은 흐르도록 되어 있고, 따라서 공간도 흐르도록 되어 있다. 그 흐름을 가만히 두는 것을 못 하거나 안 해서 괴로움이 생긴다. 반면 가만히 두면, 거기 담긴 모든 것들이 알아서 흐른다. 원래 그러한 최상 최대 최고의 상태가 발현된다. 매번 이걸 실천하기는 아직 좀 어려운데, 너는 너무 확실한 케이스라서 충격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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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ll Evans - Waltz for Deb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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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편지를 읽을 때 고막사람들이 이해해줬으면 좋겠는 점이 또 하나 있다:
3. 이렇게 된 이상, 오막은 한아임한테 100%의 남자다.
100%인 걸 객관/논리/이성적 기준을 통해 확인해서가 아니고, 그냥 내가 100%라고 정해서 그렇다. 그러니까 100% 확실히 100%의 남자다.
이게 왜 이렇게 중요한가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그것도 참 기나긴 얘기라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간단 요약 버전은 대략 이러하다.
2023년 봄 즈음에 한아임은 참 힘들었다. 그때는 정말 죽을 줄 알았다. 아마 다른 방면에서 소소하게 내면 작업을 했던 경험이 없었으면 그때 자살했을 수도 있다. 늪에서 빠져나오려면 저항하지 말고 반대편으로 쑥 빠져나오는 게 상책이라는 걸 몸으로 경험한 적 있어서, 그래서 그나마 짧은 기간 안에 쑥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렇게 죽고 싶은 상태까지 가는 과정에서, 그리고 그 이후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명확한 패턴이 드러났다. 내가 죽고 싶을 만큼 사는 게 싫어졌던 데에 일조한 인간들은 전부 동일한 특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그들이 자신의 짝꿍 욕을 밥 먹듯이 한다는 점이었다.
한아임은 다른 문제는 많을지언정 이 문제는 갖고 싶지 않다. 그래서 아마 고막사람에서든 다른 데서든, 반대쪽으로 기울 수도 있다. 짝꿍 욕을 안 하는 것도 모자라서 칭찬을 하는 것이다…!
하여간에 오막이 최고니까 만나는 거란 아주 당연한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 내가 내 우주에서 내 시점으로 지금 현재 누굴 만나는데, 그 남자가 일단은 무조건 내 세상에서 (=이 세상에서) 가장 최고가 아니면 대체 뭐란 말인가? 왜 사귀는 거야? 말이 안 되잖아.
그런데 이 당연한 얘기를 위해 이런 설명을 구구절절 하는 걸 보면, 나는 아직도 그때의 트라우마에서 완전히 벗어난 건 아닌 것 같다.
아무튼 간에, 오막은 완벽해.
신승진은 완전히 완벽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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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내가 앞으로의 모든 편지들에다가 일부러다가 마구마구 오막 자랑을 마냥 늘어놓진 않을 것이다. 그것은 고막사람들이 안심해도 좋다. 오늘은 고막사람의 컨셉이 나락 간 사연에 대해 얘기하는 날이니까 특히나 이런 내용이 나오는 것이고, 평소에야 뭐, 우리는 제법 중립적인 “-다”체를 주로 쓰는 뉴스레터인 데다가, 오막과 한아임이 실제로 대화할 때도 적지 않게 “녀석”과 “짜식” 같은 터프한 단어를 쓴다. 20년 동안 친구였던 만큼, 호칭과 말투의 스펙트럼이 매우 넓다.
그렇지만 또 한편으로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었더구나? 이렇게 될 거라는 걸. 그렇다면 고막사람 구독자들은 혹시 꽁냥꽁냥을 보려고 구독하시는 겁니까? 그렇다면 꽁냥꽁냥을 더 넣어야 합니까? 흐음… 살다 보니 별 것을 다 하게 되는군… 이것이 공개 연애인가…? 공개의 폭이 좁긴 한데 말이죠...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콘텐츠의 결이기도 하다! 장도연 손석구 사귀어 주세요 제발. 예원 신규진 응원해요. 제일 신나는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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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그래서 뉴스레터 소개글을 업데이트해야 할 것 같기도 한데… 일단 심히 귀찮다. 휴… 뭐라고 바꾸노…
아니, 안 바꿔도 되나? 태준 종원도 있는데. 우리는 고막사람 패밀리로 확장하고 싶지 않습니까? 그리고 우리는 모두 그냥 고막인간 아닙니까…?
하여간에… 오늘 이 얘기가 나온 김에 좀 얘기를 더 해보자면, 오막은 완벽하다. 나는 정말 깜짝 놀랐다. 작년에 밑바닥을 치고서부터 세상이 꾸준히 상승세로 펼쳐지긴 했지만, 너는 그 중에서도 정말 꿈에도 예상하지 못했던 제일 뭉클한 사건이다—라기보다는 상태다. 사건은 지나가겠지만 상태는 좀 더 존재에 가깝겠지.
너를 20년 ‘알았다’고 대강 생각하고 있었지만, 완전히 처음 보는 표정이 나왔을 때의 그 느낌은 진짜 충격적이었다. 완전히 가드 다운된 너의 표정을 처음 봤고, 그 표정을 보는 내 표정을 너가 본 순간도 아주 쏠쏠했다. 그때 우리는 완전히 깨어 있었다.
그런데 올봄에 하려고 원래 ‘계획’했던 것들은 망한 것 같다. 안드로이드 멀티버스, 망한 것 같다. ㅎㅎㅎㅎㅎ
그렇지만 멀티버스에 대해 말만 하는 대신, 우리 모두 다른 우주로 이동한 것 같다. 이 편지를 읽어주는 모든 고막사람들 전부 포함이다.
오막과 한아임은 이번에도 그냥 좀 친한 친구로 헤어질 뻔했다. 그런데 그러지 않았고, EP가 나올지는 미지수이지만 태준과 아임이 만나서 제법 친해졌으며, 종원 태준 오막 아임도 다 같이 만날 예정이고, 하여튼 뭐랄까, EP란 물론 중요하고 곡 작업도 물론 중요하다만 우리들이 그보다 더 제일 중요한데, 우리들이 더 가까워지려고 하는 것 같다. 그러니 오프라인에서 만나지 않는 구독자들도 결국에는 전부 다 더 가까워지는 것이다.
처음에 태준 & 오막 & 아임이 만날 때는 그 광경을 촬영했었다. 그리고 오막 & 아임이 작업실에서 수다 떨 때도 촬영을 했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는 촬영도 녹음도 하지 않았고, 그때 우리가 동의한 건 ‘지금 당장 뭘 만들겠다고 이걸 기록하기 시작하면, 그러면 더 중요한 걸 놓칠 것 같다’였다.
그래서 카메라와 녹음기를 치워버렸고, 다만 지금 이 편지에서 (어쩌면 아직은) 기록할 수 없고 기록하면 안 되는 것에 대한 기록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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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KJ - We Ain't Feeling Tim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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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기록. 기록. 그거 좋은데, 그거 하느라 경험을 안 하진 말자. 경험을 하나도 안 해도 기록이 가능하다는 거, 알고 있는가? 경험한 척하는 거, 그거 습관 되면 약도 없다. 하는 건 졸라 많은데 겪는 건 1도 없어. 근데 그걸 대강 (아니면 아주 열심히) 카메라로 찍어놓고 녹음기로 녹음해 놓고 글로 써 놓으면 그걸 자기가 경험했다고 착각하는 거야. 어디 이력서에다가 한 줄 써 놓고서는 그거 ‘했다’고 하겠지. 한 적이 없고 그냥 지나가진 건데. 마치 저절로 나이 들어지는 현상처럼.
그런데도 뭘 안 하는 건 너무너무 무섭다. 뭘 해야 한다고 습관이 들어 있으면 (세뇌가 되어 있으면) 더욱더 너무너무 무섭다. 그걸 변화시키려고 하면 안 되는 건 알고 있다. 행위 여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다. 뭐라도 하지 않는 게 무서워서 실제로 뭘 하든, 반대로 뭘 안 하든, 그건 중요하지 않단 얘기다. 무서워서 자꾸만 일을 만들고 일에 치이든, 무서운데도 쌓인 일을 하지 않든, 하여간에 무서워하는 나랑 있어 보려고 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들여다본 것들 중 매우 교묘하고 잔잔한 축에 속하는 느낌인 것 같다. 그래서 좀 어렵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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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세상에 던져놓은 계획들이 아직 실현이 안 된 건 아쉽지만, 장기적으로는 이 편이 훨씬 좋을 거라고 생각한다.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태준도 종원도 오막도 나도 친해지고 편해지는 게 1순위라는 생각이 든다. 작업만 하는 관계나 작업을 위한 친분 관계야 쉽게 구할 수 있는데, 너랑 사귀고 보니까 편한 게 최고라는 생각이 너무나 들어. 오막은 어떤 면에서는 가족보다 더 가까운데, 그것도 신기하다. 심지어 나의 가족은 꽤 가까운 가족이라서, 그보다 더 가깝기는 어려운데 말이지. 너는 농담 반 진담 반 그간 나의 '무의식에 침투했다'고 하는데, 그게 약간은 진짜인 것 같다. 20년 동안 가족 외에 가장 비교적 변함없이 일정한 것 중 하나가 너였던 것 같다.
그런데 20년이라는 시간 때문에 우리가 편해진 건 아니다. 시간만 흐르면 친해지는 거였으면 이 세상 사람들 다 친했을 것…
그보다는 시간이 collapse된다고 해야 하나? 붕괴라고 하면 어감이 쎈 거 같은데, 시간이라는 개념이 녹아나간다고 해야 하나. 너랑 있으면 시간이 눈깜짝할 사이에 가는데, 그야말로 그 ‘동안’에 시간이 존재하질 않는 느낌이다. 침투한 곳이 의식이 아니라 무의식이라 그런가?
(반쯤은 우스개소리다만, 하기 싫은 일을 하면 시간의 흐름에 온몸으로 부대끼니까 노화가 빨라지는 반면, 좋아하는 일을 하면 시간 가는 줄 몰라서 노화가 정지되는 걸 넘어서 회춘한다는 얘기가 있다.
느낌상으로는, 그거 레알이다.)
너하고 있으면 시간은 물론이고 모든 것이 너무나 풍족해서 부족한 것이 하나도 없는데… 라기에는 시간도 없고 풍족할 모든 것도 없고 부족할 무언가도 없는데, 이것이 궁극적으로는 태준 & 종원하고도 조금은 느껴야 할 테고, 그렇게 함으로써 저절로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달될 본질 그 자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거 느끼려고 그 많은 사람들이 유튜브 피드를 끝도 없이 스크롤해대고, 게임에 중독되고, 그게 아니라면 논문을 읽으면서 고귀한 척을 하거나, 여느 소설과 다를 바 없이 픽션인 ‘현실 세계’의 서사에서 허우적댄다고 생각한다. 결국엔, 하등 유익할 건 없지만 무해한 무언가가 사람을 행복하게 한다고도 생각한다.
원래 그렇게 생각했던 건 아니다. 너처럼 자주 내가 행복하길 바란다고 말하는 사람을 맞닥뜨려 본 적이 없어서 기가 막힌다. 나를 위해준다며, 행복은 없는 거라고 말해준 사람도 있었거든. 나도 실제로 그렇게 생각했었다. 지금도 행복을 굳이 쫓는다면 망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냥 내비두면 알아서 오는 게 행복인가?
아무튼. ‘무용한 나에게’라는 단편을 쓴 적이 있었어. 그리고 저번에 하루님이랑 만나서 한 얘기도 이 ‘무용함’이라는 컨셉을 중심으로 돌아갔다. (하루님은 고막사람에서 처음 언급하는 것 같다. 한아임이 좋아하는 소울 선배라고 간단 요약하겠다.)
너어어어어무 무용하여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행위와, 그 행위를 행함으로써 마찬가지로 너어어어무나 무용하여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나. 그런데 그렇게나 무용한 것을 사랑하는 나를 사랑할 때는, 유용한 것을 한다고 인정받는 나를 사랑할 때보다 얼마나 더 뭉클한가.
아무 목적도 없고 계획도 없고 ‘이 다음’도 없고 ‘이 전’도 없이 그냥 너랑 있을 때 나는 얼마나 행복한가. 이것의 반의 반의 반의 반이라도 어디에 담을 수 있으면 좋겠다가도, 안 담아도 되니까 좋은 거라는 것도 알고 있어. 담아야만 될 것 같은 순간, 이렇게 좋지 않을 것이다. 다 날아가서 없어져도 괜찮아서 너는 완벽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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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yle Carner - A Lasting Place (live from the Royal Albert Hal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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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하고 싶은 것은 어떻게든 하지만, 안 할 일은 오지게 안 하는 너라서,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무한히 안심된다. 전에 너에게 얘기했듯이, 어떤 사람들은 어떤 행위를 할 때 그 이유를 알 수 없다구. 그건 정말 피곤한 일이다. 자꾸만 생각해야 하잖아. 저 사람이 나를 위해 뭔가를 한다고 할 때, 심지어 자기 자신을 위해 뭔가를 한다고 할 때, 정말로 그러한지. 의심이 든다고. 그런데 오막이 뭘 하면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니, 이보다 더 믿음직스러울 수가 없다. 우리가 어디로 흐르든, 내가 아예 모를 일은 이번에는 없겠지.
몇 주 전이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완전히 다른 우주로 이동해 온 것 같다. 만약에 우리가 이번에 폭망한다면, 진짜 미친 거하게 완전히 폭망하겠지. 그런데 더 진실로 미친 점은, 이전에 대한 기억이 잘 안 나듯이 이후에 대한 기억도 잘 안 난다는 점이다. (이전이란 것과 이후라는 것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에 어떻게 떠오르는지를 잘 느껴보면, 둘 사이에 아무 차이가 없다는 걸 알 수 있음. 그리고 놀라운 빈도로, ‘미래’에 대한 생각은 사실은 과거에 떠올렸던 미래에 대한 기억임.) 이전과 이후 두 방향 모두로 문득문득 이동할 때가 있긴 하지만, 요즘처럼 도로 지금으로 잘 돌아오는 건 처음인 것 같다. 노력하는 것도 아닌데.
너도 나를 지금으로 데려오려고 데려오는 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고마워.
마무리를 어떻게 할까.
하지 말까. 그냥 이대로 120살까지 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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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데에도 아무 때에도 있었던 적 없는 세상, 그리고 언제나 어디에나 존재하는 세상 사이의 해석자다. 원래도 괴란하고 괴이하고 괴상하며 해석함 직하다고 여기는 것도 여러모로 괴하다. 이런 성향은 번역으로 나타날 때도 있고, 오리지널 스토리텔링으로 나타날 때도 있다. 이러나저러나 결과적으로는 어떤 형태로든 이야기를 하고 있다. 뭐 하고 사나, 뭘 쓰고 뭘 번역했나 궁금하면 여기로. https://hanaim.imaginariumkim.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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