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오막 형님? 형님 저번 편지에서 갑자기 더 열심히 한 거 티나 ㅋㅋㅋ 엉? 분홍색 볼드체도 쓰고, 화살표도 막 넣고 엉? ㅋㅋㅋ 그것은 내가 나의 지난번 편지를 특히나 즐겁고 길게 써서 그런 것 같기도 하지만서도, 또 한편으로는, 형님이 만난 구독자 분이 누구십니까? 저도 좀 만나고 싶어요, 예?
진심입니다. 예. 왜냐하면, 이 글을 읽고 계신 고막사람 친구들, 제가 내년에 한국에 갑니다, 예. 봄에 가요. 몇 달은 있을 거고요, 고막사람에 항상 피처링되는 이혜원 친구의 범고래출판사와도 뭔가 함께하는 일을 벌이게 될 것 같고, 저번에 고막사람에 참여해줬던 Editor_J가 자기가 일하는 곳을 견학시켜주겠다고 했는데 그것도 꼭 했으면 좋겠고, 박지지 님도 만나고 싶음.
근데 아무튼 간에 이 모든 것이 따로따로 떨어져 있는 현상이 아니라는 게 제 말입니다, 고막사람님들! 표면적으로는 따로따로 떨어져 있지만, 실제로는 떨어져 있지 않아요!
왜냐하면, 뜻이 있으면 길이 있다더니… 이것을 표면적으로만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실제로 받아들이면 진짜 그렇게 되더라?
한국에 가는 것도 그렇게 펼쳐졌다. 약간 믿기 어려운 현상이 벌어졌어. 너무 어이가 없어가지고 내가 스샷도 찍어놨고, 혜원이도 증언해줄 수 있다!
분명 나는 2022년 11월 16일에 대한항공 마일리지가 2023년 7월 1일에 만료될 거라는 이메일을 받았어. 그런데 그 마일리지로 티켓을 살 정도의 양은 아니었어. 그래도 아까우니까, 대한항공 온라인숍에서 어떻게든 써버리려고 한국에 사는 사람들한테 제발 아무거나 좀 사서 써주면 안 되냐고 물어보고 다녔다. (온라인숍에서 내가 직접 쓰기란 매우 귀찮게 되어 있음. 무슨 맨날 한국 폰 번호 물어보고… 하… 아주 그냥 마일리지를 티켓에 쓸 게 아니면 아무 쓸모가 없게 하려고 작정했구나, 싶었음.) 근데 친구들이 쓰려고 해도 써지지 않았었음. (마일리지 소유자 본인이어야 이마트 쿠폰이나 네이버 쿠폰 같은 걸 쓸 수 있다고 함…) 그리고 어차피 별로 쓸 만한 게 없었음. (대한항공이라고 쓰인 텐트나 가방을 누가 갖고 싶냐고요. 예?! 한우 세트는 맨날 품절임. 쳇.)
그래서 그냥 ‘아, 마일리지 날렸구나,’ 했었어.
그런데 그 상태에서, 마침 혜원이가 2024년 상반기에 범고래출판사/모던 그로테스크 타임스에 투자할 시간이 좀 많아질 것 같더군. 그러자, ‘아, 이번 기회에 한국을 가면 딱인데’ 하는 생각이 막 들기 시작했어. 마일리지는 만료되었지만 그래도 이번 기회에 가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 이 생각을 한 것은 2023년 10월쯤이었다. 그런데 이미 마일리지가 날아갔다고 생각하니까 (7월에 만료될 거라고 이메일을 받았으니까), 왠지 싫은 거야. 가고 싶은데 가기 싫은 거야.
그러고 있었는데, 2023년 11월 1일에 대한항공에서 또 이메일이 왔다. 이번에도 마일리지 만료 이메일이었는데, 저번에 만료될 거라던 그 마일리지가 아직도 만료가 안 되고 그냥 있더군???? 7월에 만료될 거라더니, 이마트 쿠폰에 쓰려고 시도해봤던 소량을 제외하고는 전부 그대로 있더군???? 그리고 2024년 1월 1일에야 만료가 될 거라더군????
그래서 어? 뭐지? 하면서 티켓을 확인하기 시작…
그런데 어? 마침 가족 마일리지 풀에 마일리지가 킹 많네?
그런데 또 어? 마침 우리 가족 중 아무도 마일리지를 쓸 계획이 없어… 이거 그냥 쓰래, 가족들이. 심지어 마일리지가 너무 많아서 프레스티지 타래…
여기까지만 하면 ‘뭐야, 그냥 마일리지가 원래 많았으니까, 일부 만료가 됐든 안 됐든 한국에 갈 수 있는 거였네’라고 할 수 있을 거야. 표면적으로는 그렇지. 근데 핵심은, 마일리지가 원래는 7월에 만료 된다고 분명 이메일 왔었는데, 갑자기 6개월이나 만료가 미뤄지면서, 그사이에 나는 한국이 가고 싶어졌고, 한국에 가면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졌고 (혜원이랑 같이 할 수 있는 일의 폭이 넓어져서), 마음 상태가 달라졌다는 것이야. 게다가 만약 두 번째 만료 알림 이메일이 안 왔으면, 가족 마일리지 풀에 아무리 마일리지가 많았어도 안 갔을걸? 가족 마일리지 풀에 마일리지가 많다는 것 자체를 몰랐을 거야. 왜냐하면 그 이메일이 마치 신호탄 같아서, “지금 가!” 하는 것 같았거든. 1월 1일에 만료되기 전에 이번에야말로 정말로 티켓을 사야 할 것 같았어. 그래서 그제서야 홈페이지에 접속해서 제대로 상황을 봤단 말이지.
심지어 마침 K-ETA 홈페이지에 이렇게 나와 있다.
“대한민국 전자여행허가제 한시 면제.”
2023년 4월 1일부터 2024년 12월 31일까지 면제래.
이것은 우연이 아니라고 나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 정부가 고작 한아임 한 녀석을 위해 ETA를 전면 면제를 해줬다는, 그런 표면적인 해석에 기반한 말을 하는 게 아니고, 내가 한국에 가고 싶다는 걸 인정하지 않았으면 면제니, 가족 마일리지니, 나의 마일리지가 만료가 되지 않고 그대로 있음이니를 알 일 자체가 없었을 거라는 걸 말하고 있는 거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것이 우연이 아니라고 믿는 게 유리하다고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뭔가가 내게 유리한 쪽으로 우연이 아니라고 믿는 건 순전히 선택의 자유인데, 선택을 내게 유리한 쪽으로 하면 진짜로 유리해진다. 반면,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지' 같은 불리한 관념을 진심으로 믿고 살면, 슬픈 예감은 정말로 틀리지 않게 된다.
세상은 나를 (우리 개개인을) 실망시키지 않는다. 세상이 나를 실망시킬 거라는 믿음조차 실망시키지 않지...!
내가 맨날 두리뭉술하게 명상 혹은 내면작업이라고밖에 표현을 안 했던 것의 구체적인 효과가 말하자면 이거다.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믿을 수 있게 되는 것. 그런데 거기에 어떤 억울함이나, 받아내야 한다는 결핍이 없고, 매우 당연하면서도 감사해지게 된다. 그리고 어차피 우리는 모두 픽션 속에서 살고 있으니, 유리한 픽션을 택하는 편이 낫다.
고막사람 친구들이 한아임 말을 들을 필요는 없지만, 2024년 새해에, 부디 꼭, 누가 됐든지, 자기 인생을 마음에 들어하는 사람의 말을 들었으면 하는 것이 나의 소망이다.
세상이 별로라고 믿을 수야 있다.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고 믿을 수도 있지. 그것은 자유다. 그러나 그것을 남에게 퍼뜨리는 건 사기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봐, 내 인생에서 슬픈 예감이 틀리지 않았으니 네 인생에서도 그럴 수밖에 없어! 이것이 확률적으로 맞아!" 그런 덫에 빠지지 말자는 것이지. "저 사람은 자기 인생이 엿 같다고 하는데 나는 왜 저 사람 말을 듣고 있지…? 저 사람 말이 다 맞아도, 최선의 시나리오는 저 사람이 엿 같다고 말하는 그 인생을 똑같이 사는 거잖아?" 즉, 우리가 죽는 날, "아, 역시 내 말이 맞았어.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았어. 역시 내가 x, y, 혹은 z를 못 한다고 믿었듯, 딱 그 말대로 나는 그것들을 못 했어. 내가 다 맞았어." 이런 걸 위안을 삼을 건지? 그걸 생각해 보자는 거다.
내가 이거에 한이 맺힌 이유가 있다. 저러한 사기를 진심으로 믿어서, 아름다운 사람이 자기 세상을 펼치지 못하면서도 그것이 옳다고 여기는 경우가 있다. 옳으니까 어쩔 수 없다고 여기면서도 억울해하는 동시에, 억울해하는 것이 권리라고 여긴다. 그것은 비극이다. 우리가 모든 한계에 대한 관념을 녹일 필요는 없지만 (예를 들어, 나는 앞으로 새로운 외국어는 추가로 배우지 않기로 결심했다) 우리가 매우 원하며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영역들에서 스스로 '나는 이것을 가질 가치가 없다'고 여기는 동시에 마치 누구 다른 사람이 내 길을 막기라도 했다는 듯 억울해하는 경우는 비극적이란 얘기다.
2024년 새해, 누가 그대들에게 ‘넌 이거 못 해.’ ‘이거 하면 안 돼.’ ‘남들도 그냥 살잖아.’ 이딴 말을 한다 한들, 그것은 그들이 사는 픽션임을 인지하고, 부디 그대들이 하려는 일을 할 수 있다고 믿길 바란다. 그것이 우리에게 유리한 픽션이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뭔가를 하고 싶어한다는 것 자체가, 그 욕망 자체가 신성한 것임을 믿길 바란다.
정말 한번만 고려해봐줘. ㅜㅠㅠㅠ 내게 (우리 개개인에게) 욕망이 있는데, 그것이 고귀한 것임을 내가 인정한다면, 그것이 얼마나 나에게 유리할지를 한번만 고려해봐줘. 우리는 일단 우리 자신이 우리에게 Yes라고 말해야 한다. 누가 Yes라고 말해주길 기다리는 게 아니라, 우리 자신이. 그것이 전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