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를 판매하기로 했다니, 멋진 생각이다.
Artlist 같은 곳에다 올리는 것을 말하는 건지? 아니면 비트 하나당 개별 판매가 가능한 사이트가 있는 것인지? 어디서 파는지 궁금하다. 괜찮다면 알려줘라.
나는 Artlist로 팟캐스트에 쓰는 모든 음악을 조달한다. 그것이 있어서 참말로 너무 좋다. 5년? 8년 전엔가만 해도, 내가 ‘시중에 나와 있는 음악을 영화에 쓸 순 없는가’라는 질문을 영화 만드는 사람들한테 하면, 혀를 내두르며, 변호사 선임해서 어마어마하게 복잡한 계약서를 쓸 게 아니면 그딴 생각은 애당초에 포기하라는 자들이 몇몇 있었다. 나를 되게 불쌍하게 봤다. '그런 걸 바라다니, 정말 뭘 모르는군' 하면서.
근데 내가 맞았지…^^… 내가 맞았다고!!!
시장은 당연히 수요에 따라 움직인다. 기술의 한계로 당장에 움직일 순 없을지 몰라도, 결국엔 그리로 움직인다. 팟캐스트, 영화나 유튜브와 틱톡을 비롯한 각종 영상물이 범람하는 시대에, Artlist는 5, 8년 전엔가만 해도 ‘절대 불가하다’고 했던 것을 원클릭으로 가능하게 해주었다. 너무나 많은 소비자들이 이런 서비스를 원하고, 너무나 많은 창작자들 역시 이런 서비스를 원하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도 비욘세 음악을 인디 영화에 쓰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야겠지만, 그거야 ‘시중에 나와 있는 음악을 영화에 쓸 수 없어서’가 아니라, ‘그냥 비욘세가 킹 유명하기 때문’이 아니겠냐? 즉, 계약 관계가 복잡해서가 아니라, 그냥 비욘세가 그런 걸 하기 싫으니까 안 하는 거다. 그건 그 어떤 시장 구조의 변화가 와도, 비욘세가 싫다 하면 걍 싫은 거다.
아무튼, 창작자들이 자기 창작물을 무조건 가장 비싸게 팔고 싶어 할 거라고 착각하는 자들이 있다. 창작을 안 해봐서일 거라고 생각한다. (...) 물론 스포티파이나 Artlist 같은 구독 모델을 반대하는 창작자들도 있긴 하다만, 나는 전혀 반대할 이유가 없는 모델이라고 생각한다.
창작자들은 그들이 글 쓰는 작가든, 뮤지션이든, 화가든 마케팅을 해야 한다. 대단한 작품을 만들기만 하면 옆 사람이 알아보고, 그 옆 사람이 당장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다른 사람에게 입소문을 퍼뜨려줄 거라고 여기는 건 광기 중에서도 탁한 착각이다. 메디치 가문 같은 스폰서를 구해서, 즉, 특정 몇 사람을 위해 예술을 할 게 아닌 한, ‘대중’이라고 불리는 거대한 힘에 어떻게든 자신을 알리려고 노력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대중이 전부 '옆 사람'이고, 그들 중 몇 명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입소문을 퍼뜨려줄지 알 수 없다.
이런 구조가 도박 같다고 여기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는, 메디치 가문 식의 스폰서 제도야말로 예술을 죽이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그 한 사람이 내 예술 싫다고, 이제 돈 안 준다고 하면 정말 안 할 건가? 그 사람을 어떻게 믿고 내 삶 = 예술을 거기다 맡긴단 말인가? 차라리 통제할 수 없는 것이 확실한 수많은 사람들에게 최대한 많이 내 것을 퍼뜨리는 게 낫다고 나는 본다.
그리고 최대한 많이 퍼뜨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가격이 낮아야 한다.
창작물에 가격이라는 걸 매긴다는 상상만 해도 치를 떠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는 이 그룹에도 속하지 않는다. 판매, 소비, 수요, 공급 같은 단어들은 전혀 더럽거나 하찮은 개념들을 표현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인간 존재의 가장 기본을 나타낸다고 생각한다. (나는 미제 자본주의 돼지인가…?)
내가 뭔가를 만들고 그 사람이 그것을 원하면 우리는 ‘합당한 가격’이라고 쌍방 동의한 것을 교환한다. 그게 전부다. 아주 근본적인 수준에서 이런 거래가 이루어지지 않는 사회를 사회라고 할 수 있는가? 그게 자본주의든 공산주의든 뭐든지 간에.
아무튼, 가격이 낮아야 많이 퍼뜨릴 수 있는데, 그래서 구독 모델이 그렇게나 강력한 것이다. 내 책들도 여러 구독 모델에 들어 있다. 어떤 때는 판매했을 때와 같은 인세를 받고, 어떤 때는 좀 덜 받는다. (무제한 구독제라면 그 구독제 회사들도 어떻게 먹고살아야지, 뭐.)
가장 중요한 건, 거기서 끝이 아니라는 것이다. 구독 모델에서 나를 발견한 사람들 중 일부는 내 책을 사러 온다. 내 팟캐스트를 듣고, 내 뉴스레터를 구독한다.
이러한 시스템이 생긴 게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를 시장이 가끔 잊는 것 같다. 옛날에는 (라떼는…?) 누가 내 책을 발견하게 하려면 돈을 지불하고 광고를 해야만 했다. 책뿐만 아니라 음악도 그랬을 거다. 라디오에다가 광고를 하고, TV에 출연하느라 어마어마한 시간을 써야 하고, 1대1 인터뷰를 해야 했을 것이다.
그렇게 온갖 자원을 쓰고 나서도 보장 같은 건 당연히 없었다. 왜냐하면 그러한 광고를 본 소비자가 선택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살까 말까?’
물론 지금도 보장은 없다. 하지만 그래도 구독 모델 덕분에 ‘살까 말까?’라는 질문은 사라졌다. 일단 구독을 한 사람들에게는 월 정액제가 어차피 매달 나가는 거기 때문에 돈이 상관없어지는 것이다. 상관있어지는 것은 이제 훨씬 더 정확해졌다. ‘내가 이것을 좋아할까?’
이게 창작자에게 얼마나 각종 자원을 절약하는 일이냔 말이지!
하여간에, 창작물을 최대한 비싸게 팔지 않으면 사람들이 창작자를 무시할 거라고 여기거나, 싸게 구할 수 있으면 비싼 돈을 사고 다시 사지 않을 거라고 여기는 이론이 있는데, 내 생각에 시장 전반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그런 일부들이 있을 수는 있는데, 대부분은 일단 1) 귀찮은 걸 싫어해서, 귀차니즘을 피할 수 있으면 돈을 더 냄, 2)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창작자)에게 Take my money!라고 외침.
물론 2)에 속하는 사람들을 많이 찾는 건 어렵지만, 그렇다면 구독 모델을 안 쓰면 어떻게 되나? 내 주머니에서 광고비가 나와야 하며, 사람들이 ‘살까 말까?’라는 어려운 질문을 대답하게끔 해야 하고, 그러고 나서도 아무도 안 사서 빈털터리가 될 수도 있다. 아니, 빈털터리 정도의 문제가 아니라 통장 잔고가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다.
결국에는 ‘(처음에는) 아무도 나에게 관심 없다’라는 진리로 돌아간다. 그래, 나는 이게 진리라고 생각한다. 내가 아무리 많은 걸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역시 처음에는) 나에게 관심이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 책이 구독제 모델에도 있고 일반 스토어에도 있고 내 개인 스토어에도 있고, 심지어 그것을 온라인으로 읽을 수도 있게끔 해두었다는 걸 모른다. 그냥 그들이 원래 책을 보던 곳에서 보는 거다. 내가 아무리 안내를 해두어도, 그거랑 별개로, 사람들은 (처음에는, 그래, 처음에는... 이라고... 나는... 믿고 싶지...) 나한테 관심이 없는 것이다…!
그러니 나는 그냥 최대한 내가 만든 것을 온갖 곳에 뿌려두는 수밖에 없다. 읽을 사람은 읽고 안 읽을 사람은 안 읽겠지. 또한, 들을 사람은 듣고 안 들을 사람은 안 듣겠지. 우리는 그냥 가장 큰 망을 던지는 수밖에 없다.
그런 거 아니겠어?